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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뵙고 싶어요. 박..by YNWAlone at 06/13 본인이 쓰신 건가요? 잘 .. by YNWAlone at 06/05 김애란에 대한 따뜻하고 .. by whitewind at 04/11 |
…나는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도 잘 모르는 소리를 하며 한껏 폼을 잡았다. 하지만 와인을 따기 위해 합심하는 지인들 곁에 앉았을 때, 아버지가 얹어준 고기를 꿀꺽 삼키며, 문학이랑 어쩌면 당신들을 초대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 기꺼이 와준 당신, 바로 그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문학은 하나의 선善을 편드는 문학이 아니라, 이제 막 사람들 앞에 선 당선자의 허영, 그 헛 폼 안에조차 삶의 이면을 비출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손들어주는, 여러 개의 팔을 가진 문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그걸 전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어리석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 김애란, <당신과 조우>, 현대문학 2008년 1월호. 김애란은 2003년 제 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위의 글은 80년대 이후 태어난 작가들에게 '나의 일상과 나의 문학'이라는 기획에서 김애란이 자신의 등단에 대해 쓴 글의 일부다. 그녀는 등단이 기뻤던 이유가 그 것이 좋은 소식이어서가 아니라 ‘나쁜 소식과 나쁜 소식 끝에 전해진 소식이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늘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로 사람을 만나는 걸 아주 좋아’하는 그녀답게, 언제든 ‘당신과 조우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당신이 조금 목말라 하는 것 같다면, 진짜와 진짜 비슷한 아이스크림케이크는, 내가 사겠다’고 다짐하듯 선언하며 글을 맺는다. 그 ‘진짜와 진짜 비슷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자신의 당선을 축하한 선배가 사온 ‘야매 아이스크림 케이크’다. 그녀는 ‘베스킨라빈스31’의 아이스크림케이크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든 따라해 보려고 애썼을 제빵사의 ‘모자라고, 우스꽝스럽고, 따사로운 무엇’이 자신의 키우고 가르쳤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라고 배워온 그녀는 ‘당신과 조우’했을 때 바로 그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줄 것이다. 그 케이크는 그녀의 소설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진짜가 아니라 ‘진짜와 진짜 비슷한 아이스크림 케이크’일까?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만 2년간 유수의 문학지들의 청탁을 받으며 단편을 선보인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었다. 단행본 1권 이상을 낸 소설가들의 소설만을 대상으로 하는 황순원 문학상은 그녀의 소설 <달려라 아비>로 인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규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으며, 결국 그녀는 그 소설들을 모아 단편집이 나오기도 전에 제38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 해에 두 편의 장편소설 공모에서 수상한 박민규 이후 가장 충격적인 등장을 했고, 대부분의 평론에서 더할 나위 없는 찬사를 받아온 그녀가 자신의 소설을 ‘진짜와 진짜 비슷한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비유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예. 저는 제가 하는 작품들이 다 소박하다고 생각하고요. 소박하다 못해 보잘것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잘것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고…… - 김애란, '계간《문학동네》좌담-한국문학은 더 진화해야 한다'에서. 이 좌담에서 김애란은 ‘하늘을 봤던 선배들’과 ‘천장을 볼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문학은 분명히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일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자질이 어떠하든, 지금의 환경은 그녀를 ‘난쟁이’로 만들어 놓았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해 보는 것이다. '나는 왜 이것 밖에 안 가졌지? 난 왜 이것밖에 얘기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천장의 높이'에 집중하는 것. 그게 바로 김애란의 방식이다. 베스킨라빈스는 안되더라도, 어떻게든 진짜와 진짜 비슷한 것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으로 김애란은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은 불완전하더라도 자신을 품어주고, 손 들어주는 '여러개의 팔을 가진 문학' 안에 있다. …모처럼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아늑한 어둠을 방해하는 발광물질을 보며, 나는 퍽 심란해했다. 아무래도 좋을 마음으로 '야광별 따위라니!'라며 투덜거렸던 것도 같다. 그런데도 나의 독립과 사생활의 의미는 어떤 통속성 안에서 저 별빛처럼 자꾸만 초라해지는 듯했다. '당신들의 계급'이 아닌 '우리들의 취향'이라는 말이 입속을 맴돌았고, 이 방이 내 방도 당신의 방도 아닌 우리들의 방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그것이 좀 불편했다. 내가 여름을 피해 들어온 곳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힘들게 도착한 곳이 결국 비슷한 삶들이 떠나오고 떠나가는, 붙인 별을 보고서야 '아, 밤이구나!'라고 안도할 수 있는 어떤 범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방의 크기와 높이를 떠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잘도 기어들어오는 그 가짜 빛들과 그 별들의 운동 안에서 나 역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결국 나는 별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약하고 조금쯤은 천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빛 가까이에 있으려고 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 빛 역시 내가 알아야 할 빛 중에 하나라고 중얼거리며 말이다. 그곳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났고, 그 방은 이미 헐려 사라졌지만, 이따금 나는 내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어느 부분들은 그 별들의 영향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 김애란, <야간비행>, PAPER 자전 소설인 <네모난 자리들>에서도 비슷하게 변주되는 이 ‘방’은 그녀가 ‘읽고 쓰는’ 버릇을 기르기 전, 스무살의 그녀를 키운 방이다. 이 글 속에서 그녀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는 루카치의 말을 적절히 변용하며 우리의 세대가 천장의 ‘야광별’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세대라고 말한다. 그녀가 우리 세대의 소설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 야광별과 같다. 그 방을 거쳐갔으리라 상상한 이들이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해 ‘경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며, 그녀는 그들의 ‘상스러움’을 기꺼이 끌어안는다. …말들의 ‘성격’을 존중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를 둘러싼 진부함 앞에서 한 번도 웃어보려 한 적이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끼리 소통이 좀 안 되고, 오해받는 것이 그렇게 곤란하기만 한 일인가 하는. 신이 우리에게 ‘완전한 언어’라는 것을 쥐어준다면, 그때 우리는 여전히 인간적일 수 있을까. 혹은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소중한 치졸함, 소중한 비열함, 유약함, 산만함, 다정함, 초조함, 엉뚱함, 소심함, 성실함, 기발함, 비굴함, 치열함과 같은 ‘인간적’ 특징들은 매우 단순하고 밋밋해지지 않을까. 그런 시대엔 아마 드라마도 없고, 문학도 없고 어쩌면 사랑도 없을 것이다. 아니면 무척 시시한 것이 되어있으리. 인간적이라는 것 자체가 선(善)일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세계를 좀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파라솔 모양의 아니 ‘불(不)’자가 ‘완전(完全)함’앞에 붙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풍경을 그려본다. 미끌미끌한 언어를 타고 딴 곳으로 좀 가보자면, 아니 불(不)자는 나무 목(木)자를 닮은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나무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나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곳이 낙원이 아니라 기쁘다. 인간과 인간이 소통이 좀 안 돼서 정말 다행이고, 언어가 순결하지 않아 좋다. - 김애란, <‘아아’ 하고 소리친 뒤> , 문학․판 그녀의 소설에 대한 수많은 평론들 중 가장 유명한 평론인 신형철의 <소녀는 스피노자를 읽는다>에서, 그는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그녀의 명랑함, 그녀의 중성성, 그녀의 천재성……. 그녀는 오랜 동안 한국문학에서 잊혀져 있던 20대들을 다시 소설 속으로 데려왔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달려라, 하니’의 하니처럼 울지 않고 달린다. 그들이 고아여도, 아버지가 없거나 어머니가 없어도, 가난해도, 직업이 없어도, 그들은 ‘농담’으로 상황을 넘기는 법을 안다. 그녀의 소설들을 통해, ‘진짜 20대’의 소설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21세기의 청춘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세대를 발견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녀가 그들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야광별의 세대를 ‘우리들의 취향’으로 묶어, 연대의 가능성까지 열어놓을 때 20대들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 깨닫게 된다. 우리가 갇힌 네모난 방으로 들어가, 그 방에서 천장을 보고 그녀가 발견하는 구절이 영원히 20대로 남아있을 기형도의 시임을 발견할 때, 결국 우리가 진짜 63빌딩을 보고도 ‘좆나 63빌딩이랑 똑같은 건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방인임을 깨달을 때, 우리가 가진 ‘콘텐츠’가 너무도 적어 이 사회 속에서 스스로가 ‘괴물’처럼 느껴질 때, 그럴 때 마다 그녀는 우리에게 “한 손을 들어 사랑의 인사를” 날려줄 것이다. 우리에게 “돌아서며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세요.”라고 안부를 묻는 소설가 김애란을 만나면, 우리는 우리가 지나가는 청춘을 연민하지 않고 견디는 법을 깨닫게 된다. 상상력과 농담이 그녀의 분신들의 유년을 채웠듯, 그녀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상상력과 농담의 힘으로 일상을 견딜 수 있다. 그게 그녀가 우리에게 사준 ‘진짜와 진짜 비슷한 아이스크림 케이크’이다. 한국 문단에서 그녀는 ‘우리 애란이’로 불린다고 한다. 국민 여동생까지는 아니지만, 문단 여동생쯤은 된다는 그녀를 향한 문단의 사랑. 그녀의 소설은 ‘혜성같이 나타난 신예’를 넘어서 한국 문단의 대안으로까지 제시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받은 찬사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최근 지방의 한 대학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 용무를 보기 전, 한 선생님과 잠시 차를 마실 시간이 있었다. 11월의 정갈한 하늘과 마른 나뭇가지들 아래서 그분과 사이를 많이 두고 앉은 나는, 어색하게 또 우스갯소리를 하다 작은 진심을 털어놓았다. 나에게 앞으로 당연히 부진不進의 시간이 있을 거란 걸 알고 있다고,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 거란 걸 의식하고 있단 얘기였다. 그분이 묻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했다. 아마, 하늘이 높고 날이 좋아 그랬는가 싶다. 나는 바보같이 심각해져, 세상에 거저는 없다고, 내가 분수에 맞지 않게 받은 복과 덕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값을 치를 시간이 있을 거란 말도 덧붙였다. - 김애란, <당신과 조우>, 현대문학 2008년 1월호. 자신이 지금 받은 복과 덕에 대해 값을 치르게 될 그 순간에 그녀가 ‘같이 가자’고 말하는 바로 그 곳은 노래방이다. 그녀가 나쁜 소식과 나쁜 소식 뒤에 전해진 등단의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했을 때,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던 곳. ‘먼 옛날 옛날에는 이 세계가 전부 노래방’이었을 거라고, ‘문학도 전부 노래’였을 거라고 상상하는 그녀가 ‘당신’에게 ‘진짜와 진짜 비슷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줄 곳이다. 그 순간이 아무리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고되더라도, 거기서도 ‘문학 만세’를 외칠 김애란. 그 때에는 반드시 나도 그녀에게 “한 손을 들어 사랑의 인사를!” 날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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