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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당신은 2001년 9월 11일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소설가 한유주가 듣던 서양 역사의 이해 수업의 강사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졌던 그 CNN의 장면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거만한 미국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응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3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라거나, 또 다른 종교 전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그 순간은 성전(聖戰)일 수도 있고, 끔찍하고 멍청한 족속들의 무서운 테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3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자신들이 죽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죽었다는 사실이다. 텅 빈 관을 채울 육체마저 남기지 못하고. 근대 이후의 모든 전쟁과 테러들이 그러하듯, 이제는 군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된다. 이라크에서 그 희생은 어린 아이들이 치르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가장 어리고 약한 것들부터 죽어간다. 너와 나의 종교가 달라서, 네가 그 나라, 그 종족의 사람이라서, 우리의 경고를 당신의 나라에 알리기 위해, 우리의 저항을 당신의 종족에게 선포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그 모든 것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2001년 9월 11일……, 우리는 새로운 광경을 목도한다. 미디어란 얼마나 재빠른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첫 번째 빌딩이 무너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두 번째 빌딩이 무너지기도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또 곪고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카메라는 이미 그곳에 당도해 있다. 장면은 0과 1로 전환되어 잠시 대기권 밖을 떠돌다가, 곧바로 세계 곳곳의 안테나로 흡수된다. 전광판, 텔레비전, 갑작스런 호외, 우리의 세대는 너무나 공시적이다. 고통을 느끼기 위한 순간의 여유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람들은 거지의 바구니에 동전을 떨어뜨리듯 무심한 시선으로 그 장면을 본다. 장면은 간결하고, 아무런 부연도 하지 않는다. 장면은 감각 너머에 있다. 그것이 우리의 야만이다.

- 한유주, <그리고 음악>中

             

             어쩌면 근대 이후, 그러한 죽음들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있었을 나라인 미국에 911테러가 벌어졌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그 (여러 가지 의미에서) 놀라운 광경을 지켜본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2974명의 죽음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로 남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신문이나 뉴스와 같은 매체들은 한유주의 지적처럼 너무나 공시적이었고, 그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사안들에 자신들의 펜과 카메라를 사용했다. 사람들은 건물이 무너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그 영화 같은 영상 안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상상하지는 못한다. 곧 911테러라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우리들에게 어떤 거대한 정치적인 쟁점이나 사회적인 이슈는 될 수 있지만 ‘실제’가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 사건으로 인해 부모나, 아이나, 친구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빌딩이 무너지던 순간에 핸드폰이나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뉴욕 시내의 모든 벽에 붙어있었다는 포스터를 보지 못했고, 그라운드 제로에 꽃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911테러는 분명히 세계 전체와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큰 사건이지만, 우리는 그 사건을 삶으로 경험하지 않았다.

             우리는 911을 뉴스의 영상이나, 신문의 기사나,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나, 짧게 편집된 UCC들로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정치적이거나,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우리에게, 그리고 뉴욕과 미국에 살지 않았던 대부분의 세계 사람들에게 9월 11일은 테러가 있었던 날일뿐이다. 그 테러로 인하여 세계적으로도 많은 것이 변화했고, ‘혹시나’하던 세계 3차대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우리에게 911은 생활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아마도 대다수의 선량한 미국인들에게) 911은 ‘언제 어디에서 내가 죽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인 동시에 실생활이다. 그들은 실제로 911로 인하여 발생한 두 차례의 전쟁을 감내해야 했고,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동시에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지하철이나 택시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도 겁을 내야 했으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지킬 방도를 궁리해야 했다. 그 방도는 때로는 극단적인 테러혐오주의, 극우파, 인종 차별 등으로 나타났고, 그와 반대로 평화주의, 올바른 민주주의로 드러나기도 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어찌됐건 미국인들에게 911이란, ‘나’의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속의 오스카처럼. 그들은 삶 속에서 부모나, 자식이나, 친구나, 동료나, 자존심이나, 꿈이나, 긍지나, 평화를 잃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아름다운’ 소설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소설은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911을 누가 저지른 것인지, 그들은 무슨 이유로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 모든 일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사건 이후 전 세계가 궁금해 하던 것들에 대해 소설은 침묵한다. 911테러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가 우연히 발견한 ‘열쇠’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 없는 삶’을 버텨낼 수 있게 할 무엇이지, 그 슬픈 죽음의 원인이나 분노의 배출구가 아니다. 대체 누가 테러를 저질렀는가? 테러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모든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실제로 그 일을 겪었던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들이다. 죽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이며, 그들이 수 없이 가정했을 모든 ‘If’에 대한 열려있는 모든 대답이다.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그 자리에 내가 대신 갔었더라면, 하루만 일찍 휴가를 받았더라면, 차가 막혔더라면, 감기에 걸려서 결근을 했더라면, 회의를 내일로 미뤘더라면…….


             …… 하지만 나는 그의 마지막에 대해 다르게 상상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상상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상상의 힘으로.

- 김연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中


             이 소설을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모든 매체를 통해 추천했던 김연수가 꿈꾸는 바로 그 ‘상상’의 힘으로, 오스카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하나로 모은다. 지극히 아름답기에 그 만큼 비극적인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결국 그 상상의 절정이다. 김연수가 이 소설을 ‘지난 5년 간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추천하면서 던지는 말은 ‘사실이 아닌 진실을 믿고 싶다’는 것이다. ‘테러가 벌어졌고,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 위에 몇 겹이나 덧 입혀지는 오스카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세상 속 도저한 폭력과 전쟁과 죽음에 숨겨져 있을 모든 사연들을 듣고 싶게 만든다. 사실이 아닌 진실을, 그들의 죽음에 대해 당신이 말하지 못하는 상상들을.

             이 소설은 소설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이야기를,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결국 ‘소통’ 때문이라면, 이 소설은 불완전한 소통의 의미까지 끌어안는다. 말해지지 않는 것, 말하지 못하는 것, 쓰지 못하고 남기지 못하는 것, 해석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암호는 결국 흔하게 도처에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쉽게 잊고 사는 결국 단 하나뿐일 결론이다.

 
             오스카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발명품들 중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구급차’이다. 안녕히! 사랑해요! 두 마디 말이 반짝거릴 때, 우리 안에서는 부디 안녕하기를 바라는 사랑하는 이들도 함께 반짝인다. 그래서 오스카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은, 이 소설의 마지막 아홉글자다.



by sketch | 2008/06/20 02:09 | 언제나, 문학.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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