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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우리는 새로운 광경을 목도한다. 미디어란 얼마나 재빠른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첫 번째 빌딩이 무너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두 번째 빌딩이 무너지기도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또 곪고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카메라는 이미 그곳에 당도해 있다. 장면은 0과 1로 전환되어 잠시 대기권 밖을 떠돌다가, 곧바로 세계 곳곳의 안테나로 흡수된다. 전광판, 텔레비전, 갑작스런 호외, 우리의 세대는 너무나 공시적이다. 고통을 느끼기 위한 순간의 여유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람들은 거지의 바구니에 동전을 떨어뜨리듯 무심한 시선으로 그 장면을 본다. 장면은 간결하고, 아무런 부연도 하지 않는다. 장면은 감각 너머에 있다. 그것이 우리의 야만이다. - 한유주, <그리고 음악>中 우리는 911을 뉴스의 영상이나, 신문의 기사나,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나, 짧게 편집된 UCC들로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정치적이거나,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우리에게, 그리고 뉴욕과 미국에 살지 않았던 대부분의 세계 사람들에게 9월 11일은 테러가 있었던 날일뿐이다. 그 테러로 인하여 세계적으로도 많은 것이 변화했고, ‘혹시나’하던 세계 3차대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우리에게 911은 생활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아마도 대다수의 선량한 미국인들에게) 911은 ‘언제 어디에서 내가 죽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인 동시에 실생활이다. 그들은 실제로 911로 인하여 발생한 두 차례의 전쟁을 감내해야 했고,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동시에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지하철이나 택시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도 겁을 내야 했으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지킬 방도를 궁리해야 했다. 그 방도는 때로는 극단적인 테러혐오주의, 극우파, 인종 차별 등으로 나타났고, 그와 반대로 평화주의, 올바른 민주주의로 드러나기도 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어찌됐건 미국인들에게 911이란, ‘나’의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속의 오스카처럼. 그들은 삶 속에서 부모나, 자식이나, 친구나, 동료나, 자존심이나, 꿈이나, 긍지나, 평화를 잃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아름다운’ 소설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소설은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911을 누가 저지른 것인지, 그들은 무슨 이유로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 모든 일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 사건 이후 전 세계가 궁금해 하던 것들에 대해 소설은 침묵한다. 911테러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가 우연히 발견한 ‘열쇠’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 없는 삶’을 버텨낼 수 있게 할 무엇이지, 그 슬픈 죽음의 원인이나 분노의 배출구가 아니다. 대체 누가 테러를 저질렀는가? 테러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모든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실제로 그 일을 겪었던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들이다. 죽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이며, 그들이 수 없이 가정했을 모든 ‘If’에 대한 열려있는 모든 대답이다.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그 자리에 내가 대신 갔었더라면, 하루만 일찍 휴가를 받았더라면, 차가 막혔더라면, 감기에 걸려서 결근을 했더라면, 회의를 내일로 미뤘더라면……. …… 하지만 나는 그의 마지막에 대해 다르게 상상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상상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상상의 힘으로. - 김연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中 이 소설을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모든 매체를 통해 추천했던 김연수가 꿈꾸는 바로 그 ‘상상’의 힘으로, 오스카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하나로 모은다. 지극히 아름답기에 그 만큼 비극적인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결국 그 상상의 절정이다. 김연수가 이 소설을 ‘지난 5년 간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추천하면서 던지는 말은 ‘사실이 아닌 진실을 믿고 싶다’는 것이다. ‘테러가 벌어졌고,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 위에 몇 겹이나 덧 입혀지는 오스카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세상 속 도저한 폭력과 전쟁과 죽음에 숨겨져 있을 모든 사연들을 듣고 싶게 만든다. 사실이 아닌 진실을, 그들의 죽음에 대해 당신이 말하지 못하는 상상들을. 이 소설은 소설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이야기를,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결국 ‘소통’ 때문이라면, 이 소설은 불완전한 소통의 의미까지 끌어안는다. 말해지지 않는 것, 말하지 못하는 것, 쓰지 못하고 남기지 못하는 것, 해석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암호는 결국 흔하게 도처에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쉽게 잊고 사는 결국 단 하나뿐일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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